열일곱 소년은 얼추 무작정으로 상경하는 열차에 올랐다.

그건 허구한 날 술만 드시는 아버지가 극도로 미운 때문이었다.

어차피 찌든 더께의 가난이야 어찌할 수 없다지만 가장이기를

포기한 듯한 행태의 아버지는 수용할 수 없다는 게 내 성정의 한계였다.

더욱이 공부 잘 하던 나를 고작 초졸 학력으로

‘방기放棄한’ 아버지는 극도의 증오 대상으로까지 각인되는 때였다.

서울서 초등학교 선배를 만나 1박한 다음 이튿날 인천 제물포로 넘어갔다.

선배의 소개로 일하게 된 주물공장에선 냄비와 솥 등 다양한 주방기구들을 만들었다.

하지만 산재사고가 너무도 빈발했다.

순식간에 손이 잘려 나가고 발이 육중한 기계 틈에

끼이는 불상사는 예측불허의 공포, 그 자체였다!

거기서 더 있다가는 나도 영락없는 불구자가 되기 십상이었다.

집을 떠나올 땐 그리도 미웠던 아버지가

그리움과 미안함의 달로 두둥실 떠서 내 마음속으로 들어왔다.

약 보름치 일한 수당을 받고 집으로 내려왔다.

크게 매 맞을 각오까지 하였으나 아버지께선

불문에 붙이면서도 “다시는 나가지 말라!”고 당부하셨다.

이후로도 술을 물처럼 드셨던 아버지께선

이 풍진 세상이 싫다며 25년 전에 훌쩍 저 세상으로 가셨다.

헛헛함에 당초의 마음을 바꿔 아들에 이어 둘째인 딸을 낳았다.

내가 못 배웠기에 당해야만 했던 사회적 불이익과

편견 따위 모두를 상쇄하자면 아이들만큼은 반드시(!) 잘 가르치고 볼 일이었다.

정말이지 사랑과 칭찬에 더하여 최선까지를 담아

두 아이를 지극정성으로 기르는데 최선을 모았다!

아울러 나 또한 마불정제(馬不停蹄)의 정신으로 수십 년 동안 독서에 공을 들였다.

그런데 역시나 책은 꿈을 이루는 디딤돌이었다.

나는 지난달에 드디어 정식으로 수필가로 등단했다.

아이들도 바쁜 틈을 내 나의 등단(식)을 축하해 주었는데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.

아들과 딸이 더욱 고마웠던 또 ‘팔불출’ 짓을 하는 것이겠으되

대기업에의 취업 성공(아들)과 서울대를 과 수석으로 졸업(딸)했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다.

나는 지금도 여전히 박봉의 비정규직이다.

하여 두 아이들에게도 사교육은 언감생심이었다.

다만 아이들이 어렸을 적부터 주말과 휴일이면

의도적으로 도서관을 데리고 다니면서 책과 동무되게끔 유도하였다.

아울러 늘 그렇게 사랑과 칭찬을 양수겸장으로 아끼지 않았다.   

오늘 오후엔 동창회가 있어 고향에 간다.

동창생들에게 건넬 요량으로 나의 등단작품이 실린 책을 스무 권 가량 준비했다.

비록 집안이 불우하고 너무나 가난했기에 포기할 수밖에

없었던 공부였지만 나는 이를 독서와 독학으로 극복해냈다.

이는 평소의 내 주관인 ‘명필은 붓을 안 가린다’는 것이

뒷받침해 준 결과의 어떤 변곡점(變曲點)이다.

에스파니아의 작가 그라시안은

‘아름다운 시작보다 아름다운 끝을 선택하라’고 했다.

앞으로도 나의 가족사랑과 문학에 대한 열정은

중석몰촉(中石沒鏃)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.

끝으로 사족이겠지만 사방팔방으로 자랑하고픈

내 사랑하는 아이들은 내가 이 풍진 세상을 어깨 확 펴고

살게 하는 뿌듯한 단초이자 자긍심의 보루이다.